추억
시골집 바로 옆에 꽤 큰 저수지가 있다. 그곳의 이름이 '유유제'라는 건 고향을 떠난지 30여년이 지난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물론 어렸을적 내가 살던때에는 그런 이름이 불리운적이 없었던것 같고 아마도 마실길 정비를 하면서 지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에겐 그저 '저수지'로 불리우던 어릴 적,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촌언니가 시골에 놀러 왔었다.
하필 그날따라 바람이 거세게도 불었는데 그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을 보고 저게 파도냐고 물었던 게 생각난다.
초등학교 1학년쯤, 그때는 산비탈을 개간해서 농사를 짓던 때였기에 학교에 다녀오면 늘 엄마 아빠가 일하고 계시는 밭으로 가는 게 우리의 일과 중 하나였다. 해가 지도록 일을 돕다가 가끔은 지쳐서 잠이 들 때도 있었다. 그 날 아빠 등에 업혀 반쯤은 졸고 반쯤은 깨어 있었던 거 같은데, 어두컴컴한 저수지 안에 큰길을 지나고 있는 버스와 그 빛에 보이는 나무들의 실루엣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단지 물에 풍경이 비쳤을 뿐일텐데 또 다른 세상이라도 발견한것처럼 놀랬던 기억이 지금도 너무 선명하다. "아빠, 저수지 안에도 길이 있어. 버스도 지나가. 와~ 신기하다." 졸음이 가고 눈이 번쩍 떠졌다. 그 기억때문인지 난 물 속에 꼭 또 하나의 세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자주 한다.
그 당시에도 요즘처럼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었다. 유유제에는 지금도 토종 참붕어나 가물치, 뱀장어 등 귀한 어류들이 많은데 주말이 되면 저수지 주변으로 빙 둘러서 세워진 낚시꾼들의 조명 때문에 화려한 무대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겨울엔 30cm는 족히 되고도 남을만큼의 두께로 얼음이 얼어서 썰매를 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안개가 자욱하던 어느 겨울 아침, 그날도 엄마가 아침을 지으시는 동안 작은오빠와 동생과 나 셋이서 썰매를 타러 나갔다가 그 안개에 갇혀 두 시간여를 헤맸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
9년 전, 아빠가 갑작스레 사고로 떠나시고 황망한 마음을 주체 못한 우리 남매들은 다들 넋이 나가있었다. 작은오빠는 충격에 수면유도제를 먹지 않고선 잠을 자지 못했고 나 또한 이른나이에 급성으로 폐경이 왔다. 그때가 5월이었는데 아버지가 시작해 놓은 농사일을 한참 관리해야했고 전 해에 심은 마늘은 수확을 해야했다. 우리 오남매들은 배우자들까지 모두 일을 하는 맞벌이 부부들이었는데도 주말마다 먼길을 달려가 그 많은 일을 뚝딱 뚝딱 해내곤 했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다들 한 걱정들을 했다. 한 달 기름값은 얼마며 아이들을 두고 시골에 다니는 부모의 모습이 정상으로 비칠리가 없을만도... 그 무모함의 대가로 우린 사느라 바빠서 잊고 지냈던 남달랐던 우애를 회복해갔다. 그 해 그 마늘 수확부터 시작해서 9년째 매년 100여접이 넘는 마늘을 지이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누가 또 마늘 농사를 그렇게 지을까 싶을정도로 정성들여 키워서이기도 하겠지만 신기하게도 그 어느집 마늘보다 탄탄하고 맛이 좋다는 피드백을 듣고 있다.
아빠를 정원에 모신 덕분에 우리는 자주 아빠를 보러 가는 자식들처럼 설레어하며 막걸리를 사곤 했다. 토요일 밤엔 뒤뜰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다가 아빠를 추억하며 가끔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그동안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친밀한 시간들을 만들어갔다. 살아계셨을때 이랬더라면 아빠의 농사일이 덜 힘들고 덜 외로우셨을텐데 하며 참 많이 아쉬워 했다.
일요일 아침, 술 때문에 속이 쓰린 건지 아빠의 부재때문에 마음이 쓰린 건지 모를 쓰라림을 달래려 이른 산책을 나간 적이 있었다. 문득 고개 들어 저수지를 보니 그 안에 또 하나의 세상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 세상. "아빠, 저수지 안에 산도 있고 나무도 있고 하늘도 있고 구름도 있어~. 신기하지." 갑자기 어릴적 아버지 등에 업혀 비몽사몽간에 보았던 버스가 지나가던 그 풍경과 내 말을 들으시며 대꾸해주시던 아버지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어제 일처럼 떠 올라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